1.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여주인공
영화의 여주인공 폴라는 자신을 돌봐주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이모가 누군가에게 살해되는 사건을 겪습니다. 그녀는 살의에 빠져 이모와 함께 살던 런던 저택을 떠나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경찰은 이모를 죽인 범인을 잡는 데 실패하고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과거의 슬픔을 잊고 이제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입니다. 폴라의 곁에는 그녀를 행복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가 서 있는데 그의 이름은 그레고리로 폴라는 완전히 그에게 빠졌고 둘은 결혼을 꿈꾸고 있습니다. 폴라는 성악 공부마저 포기하고 그레고리와 결혼한 후 그녀가 이모와 함께 지냈던 런던 저택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행복할 것만 같던 그녀의 신혼 생활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그레고리가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며 폴라를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레고리는 폴라를 자꾸만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가 "그녀에게 당신은 물건을 잘 잃어버리잖아."라고 말하니 평소에 자신의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던 그녀가 정말 물건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물건은 폴라에게서 찾아집니다. 그것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니 그녀는 점점 인지적으로 문제가 생긴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그녀 앞에서 거만한 하녀를 오히려 치켜세우며 그녀를 은근히 깎아내립니다. 그녀를 볼품없는 여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점점 나약해져 가는 자신에게 좌절하던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집안 곳곳에 있는 가스등입니다. 당시엔 집 안에 있는 가스등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곳에서 불의 밝기를 커지거나 줄이면 다른 곳들도 똑같이 불의 밝기가 커지거나 줄어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꾸만 가스등의 불이 줄어들었다 커지는 걸 보지만 이를 보는 사람은 그녀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로지 그녀가 볼 때만 이런 일이 벌어지죠. 결국 그녀는 점점 자신의 정신이 이상해져 간다고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2. 가스라이팅 어원이 된 영화
몇 년 전부터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듣게 되는데요. 이 단어의 어원이 바로 연극 가스등이었고 이 연극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가스등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 작품에서 남편의 가스라이팅으로 점점 쇠약해져 가는 여인인 폴라를 연기해 당시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큰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모,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물론 불륜으로 인해 그녀의 명성에 다소 금이 가긴 했지만 말이죠. 자세히 썰을 풀자면 그녀는 이탈리아의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를 보고 사랑에 빠져 그에게 편지를 썼고 로셀리니는 그런 그녀를 이탈리아로 초청해 함께 영화를 찍으며 사랑에 빠지고 버그만은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할리우드에 불륜을 저지른 배우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로셀리니, 버그만 둘 다 결혼한 유부남, 유부녀였고 버그만과 신뢰를 쌓았던 연예 평론가까지 그녀에게 등을 돌리면서 완전 여론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추방당하는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떠나게 되었고 그 후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로 돌아와서 찍은 작품으로도 그녀는 아카데미상과 에미상 등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 하나는 참 뛰어난 배우였습니다.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영화 속 남편인 그레고리가 아내 폴라에게 가하는 행동은 요즘 시사 프로에 나오는 가스라이팅과 매우 흡사합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심리적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 판단력을 잃게 하여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레고리는 폴라를 계속 심리적으로 조종하여 그녀 자신에 대해 의심을 가질 만큼 그녀를 쇠약한 상태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옮겨놓고 까먹을 정도로 심각한 건망증이 있는 여자, 자신을 제대로 꾸밀 줄도 모르는 여자, 자꾸 헛것을 보는 여자로 만들어버리며 그녀가 온전히 그레고리에게 의지하게 만듭니다.
3.가스라이팅의 섬뜩한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영화
영화 가스등은 범죄 심리 표현인 가스라이팅의 의미를 드라마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영화를 봤을 당시만 하더라도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때여서 그냥 영화적 재미로만 봤었는데 지금 영화를 다시 본다면 수많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봤던 가스라이팅 사건들을 영화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가스라이팅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거나 고전 스릴러 영화, 잉그리드 버그만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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